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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와 만화방 아가씨의 사랑이야기 (03편)


백수 : 오늘 잘못했다간 맞아 죽을뻔 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걸까? 그녀 만화방에서 불량고교생 두명이 행패를 부렸다. 한권값으로 한 열권을 본모양이다. 그녀가 그걸 눈치채고서 돈을 더 내라고 하다가 싸움이 붙었다. 애그 자식들 나처럼 능숙한자도 세권이상은 안했는데.. 무모한 놈들이다.
하여간 주인이 여자니까 이것들이 엄청 날뛰었다. 나두 겁이 졸라 많이 났다. 만화책을 덮고 실 집으로 갈려고 했는데 .. 이것들이 그녀를 툭툭친다. 순간 나도 모르게 툭툭치던 놈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다른 한녀석을 겁나게 째려보았다. 그자식이 "머 머야. 이새끼.. 니가 먼데 끼드는데..."라고 말했다. 나이도 어린게 반말을 썼다. 기분이 엄청 더러웠다. 보통 영화나 연속극의 이런 상황에서 '나 이여자 남편이다. 또는 약혼자'다 그러는 걸 본적이 있어서 나두 그렇게 말할려구 했는데 그기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나 백수다" 라고 말해버렸다. 아까 맞은 녀석까지 정신을 차리더니 웃었다.
그자식들 아주 악날한 놈들은 아니었나 보다. 내가 덩치가 좀있고 인상이 더러버 보였는지 그냥 있는 돈이 이거뿐이라며 내고 가버렸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는걸 느꼈다. 그녀는 자기자리에 앉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뭔가 위로의 말은 해주어야겠는데. 할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본 만화책값을 살며시 놔두고 그냥 나왔다. 그녀는 내가 백수라고 말한걸 분명히 들었을것이다. 다음부터
어떻게 그녀 얼굴을 보나..?

만화방아가씨 : 오늘 큰 낭패볼뻔 했다. 어떤 고딩둘이서 돈도 안내고 만화책을 자꾸 바꿔 보았다. 어떻게 한권값으로 열권이나 보냐.. 몹시 열받았다. 그래서 돈내라고 했더니 툭툭 치며 날뛰었다. 괜히 싸움걸었나 싶었다. 겁도 났다. 눈물이 날려는걸 꾹 참았다. 근데 그 백수녀석이 나타나 한녀석을 한방에 때려 눕히더니 다른 녀석을 겁나게 째려보았다. 멋있었다. 근데 그 상황에서 나 백수다라고 그러다니 갑자기 너무 웃음이나왔다. 애써 날 도와주었는데 웃고 있으면 그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두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혹시 말을 걸면 운것처럼 보이기 위해 침으로 눈에다 찍어 발랐다. 그런데 그냥 나가버렸다.
오늘 잠자리에 드는데 날 도와준 그가 자꾸 눈에 어린다.
내일 그가 오면 고맙다고 말하고 라면하나 끓여 주어야 겠다.


백수 : 내가 백순게 탄로났다. 그녀 만화방에 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 먹고 잠이나 자야겠다. 라면을 먹는데 귀가 엄청 간지러웠다. 아무래도 라면에 이상이 있는거 같다.

만화방아가씨 : 어제 도와준게 너무 고마와 그를 위해 아침에 시장에서 생라면 사리와 표고버섯 시금치등을 사가지고 왔다. 육수도 만들어 그가 오면 바로 끓여서 줄것이다. 방부제 든 시제품 라면으로는 이렇게 진하고 여운이 남는 맛을 내기 어렵고 정성도 결여된 것이기에.. 오늘 좀 신경을 썼다. 근데 이녀석이 나타 나지 않았다. 닳아져 가는 육수를 보며 그녀석 욕을 엄청했다. 좋아질려고 하면 꼭 딴쪽으로 샌다.


백수 : 오늘 컵라면 하나 사가지고 만화방에 갔다. 어짜피 백수라고 알려진것. 더이상 쪽팔릴것두 없다.
그녀가 오늘따라 화사하다. 용기를 내어 "아..아.. 아줌마 뜨거운 물좀 주세요.."라고 말했다.. 으이그...
아가씨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녀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을 부어주었다. 근데 라면 맛이 이상하다. 상한거 같다. 이상한 고기 비린맛이 났다. 아까왔지만 화장실에 부어버렸다.

만화방아가씨 : 그가 컵라면을 가지고 만화방에 왔다. 라면개시하라는 무언의 시위같다. 그가 또 아줌마라 그랬다. 엄청 얄미웠지만 그때 도와준 일도 있고해서 인심을 써 육수를 부어주었다. 근데 녀석이 라면을 먹다말고 화장실로 간다. 먹으면서도 쌀수가 있다니 부러운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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